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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들은 신하들과 자주 만나 나라의 정사를 의논했다. 나라를 논하던 곳이 바로 편전이었다. 이곳은 선정전이 편향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창덕궁에 푸른 지붕이 있는 곳은 선정전이 유일하다.


당시 청색 기와는 매우 비쌌기 때문에 왕이 나라를 찾고 있던 선정전만이 푸른색 기와로 덮여 있었다. 이후 히점당으로 사찰을 옮긴 후, 선정전은 죽은 왕과 왕비를 모시는 데 사용되었다.


선정전 동쪽에는 희정당이 있다. 희정당은 초기에는 임금이 잠든 사적 공간으로 사용되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편전으로 사용되었다. 희당도 1592년 임진왜란을 시작으로 세 차례나 불탔으며, 현재의 건물은 네 번째로 건립되었다.


일본인들은 마지막 복원 과정에서 경복궁의 강녕전을 옮겨 건립하여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파괴하고 파괴하였다. 원래 희정당은 여러 개의 돌기둥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주변에 연못이 있는 매우 우아하고 낭만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복구에 참여하면서 규모뿐 아니라 형태와 분위기도 크게 달라졌다.


희정당은 조선 후기 양탄자, 유리창, 서양식 의자 등 서양 문화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20년경 해강 김규진이 그린 산수화는 두 점이 있다.


동벽에 있는 '총석정절경도'와 서벽에 있는 '금강산 만물초승경도'는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이 김규진이 그리도록 명하였다. 산수화지만 사실적이고 웅장하며 한민족의 정신을 잘 표현하고 있다.